<출처: 영화 눈길>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영화 <눈길>은 일제강점기 말,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간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눈물만 보여줘도 끝이 없을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소녀들의 순수한 웃음에 집중한다.
<출처: 영화 눈길>
난 한 번도 혼자인 적 없었다. 네가 있어 여태 내가 살았지.
끔찍한 상황 속 그들은 서로 위로하며 버티었다. 감히 그 아픔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웃음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그들의, 우리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이 가기 전, 조심스럽게 아픔이 있었던 공간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라바울 위안소, 강덕경 作>
<출처: 영화 눈길>
실제 위안부 피해자인 강덕경 할머니가 그린 그림 속 위안소와 촬영지의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자료에 의하면, 위안소 건물은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대체로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히 분리되었다고 한다. 매우 좁은 방들이 모여 있었으며, 섬 같은 곳은 야자나무로 지은 천막이 전부이기도 했다.
<출처: 영화 눈길>
영화 속 위안소가 당연히 세트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경상남도에 위치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또다른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다.
S#1. 고통의 위안소, 국립소록도병원
<출처: 빛나리는 그림님 블로그>
<출처: 빛나리는 그림님 블로그>
1916년, 일본은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짓고 한센병(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 과거에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환자들을 가두었다. 그들은 한센인들에게 온종일 강제 노역을 시켰으며,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단종수술을 시켰다. 그때의 자혜의원이 지금의 국립소록도병원이다. <눈길> 영화의 촬영지인 장소는 병원의 여러 건물들 중 감금실에 해당하는데, 내규를 위반한 환자를 격리하던 곳이다.
<출처: 영화 눈길>
저기 저 붉은 벽돌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눈물이 묻었을까. 전쟁으로 인해 일어난 많은 이들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S#2. 집으로 오는 길, 원대리 자작나무숲
<출처: 영화 눈길>
<출처: 영화 눈길>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전쟁 후 소녀들이 위안소에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가던 길 중의 하나이다.
<출처: 어영 04님 블로그>
<출처: 어영04님 블로그>
감독은 얇은 나무들이 빽빽이 있는 모습을 통해 마치 감옥의 철창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자작나무에 있는 검은 생채기는 가지가 떨어지며 생긴 흔적이다. 자작나무는 순결, 생명을 상징하는데, 몸통 곳곳에 상처가 있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소녀들의 마음 같기도 하다.
<출처: 뮤지컬 영웅>
그 상징성과 모양새 때문인지 뮤지컬 ‘영웅’에서 단지 동맹(왼손 넷째 손가락을 잘라 혈서로 ‘대한 독립’을)을 하는 무대로 자작나무 숲이 쓰이기도 했다.
S#3. 영애의 죽음신, 하늘목장
<눈 내리던 날의 풍경, 강덕경 作>
<출처: 영화 눈길>
집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소녀들은 새하얀 눈길에서 잠이 들었다. 영화팀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눈길을 찾으려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정해진 이 촬영지는 강원도의 하늘목장이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꽃밭양지길 458-23, 하늘목장>
깨끗하지만 차가운 눈길이 소녀들이 버텨온 세월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끝없이 이어진 산봉우리들을 넘고 또 넘었으리라.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고되기만 하다.
S#4. 종분의 쓸쓸한 귀향, 만어사
<출처: 방방콕콕>
<출처: 방방콕콕>
종분(김향기)이 홀로 집으로 돌아오며 커다란 돌들을 건너던 장면이 기억나시는가. 여기는 경상남도 밀양의 만어사라고 하는 절 앞이다. 엄청난 양의 돌들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비경이지만, 이곳의 돌들은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고 하여 더 유명하다.
<출처: 방방콕콕, 소원을 빌면 무거워지는 돌>
자연의 신비 덕분인지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무조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시 이곳을 여행하게 된다면 당신의 소원과 함께 할머님들의 평안을 빌어 보자. 모두의 마음이 모여 답답한 현실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나지 않는 눈길
<출처: 영화 눈길>
영화 속 종분(김향기)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끌려감, 김순덕 作>
<출처: 영화 눈길>
<출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 위안소 분포 지도>
중국에서, 일본에서, 혹은 이름도 모르는 섬에서. 소녀들은 이용되고 버려졌다. 전쟁이 끝난 후,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해 타향에 눌러앉게 된 이들도 있었고, 수치심에 차마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어찌어찌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고통받았다. 가족들이 모두 죽고 없던 경우도 허다했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2길 22, 평화의 소녀상>
이제 우리나라에 남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39명뿐이다. 1945년, 전쟁은 끝났지만 할머니들의 눈길은 아직도 끝날 생각이 없다. 진심 어린 사과와 인정만이 할머님들께 봄을 가져다 드리는 방법이 아닐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커다란 일은 잊지 않는 것. 가슴에 다시 한 번 아픈 역사를 새겨 본다. 잊지 않겠습니다.
2017년 3월, 아직도 눈길이다.
사람과 공간을 잇다. LOMA
글/편집: 로케이션 매니저 이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