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공간

[카카오 스토리펀딩 3화] 막막함을 대행해 드립니다
2017.02.01



 

 

 

실장님, 급하게 연락드렸어요

로케이션 매니저라는 일을 하려면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막막함'이다.

 

"실장님, 정말 급하게 연락드렸어요..내일모레 촬영인데, 필요한 공간이 이렇고 저렇고.."

 

열에 여덟은 늘 '급하게' 연락이 온다. 더군다나 찾는 공간들은..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과 비슷한 곳이 필요해요."

"자동차가 터널에서 벽을 타고 360도 회전을 해야 돼요."

"눈 덮인 록키 산맥처럼 보여야 돼요."

 

이러한 요구에 막막함과 두려움이 생겨나고 사멸되기를 반복한다. '실제'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제 하지 않는 '상상(콘티 그림)' 속 공간을 찾아내는 건 고도의 집중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막을 좀 찾아주세요 

"실장님, 또 급하게 연락드리네요..화장품 광고인데, 황무지처럼 땅이 갈라지고 메마른 평야가 필요해요."

 <"갈라진 피부, 메마른 수분을 찾아드립니다" 화장품 광고를 촬영한 영종도>

 

"실장님, 매번 죄송하네요..의류 촬영인데, 외국 모델이 걸을 모래사막이 필요해요."  

<의류 촬영을 진행한 신두리 해안 사구>

 

막막함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위 공간처럼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공간을 찾는 일. 그리고..

 

 

흔하지만 흔하면 안 되는 공간

사실상 우리나라에 '없는' 공간을 찾는 건, 그에 상응하는 공간을 찾았을 때 촬영에 들어가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하지만 '흔한' 공간이지만 '흔하면 안 되는' 공간을 찾는 일은 더욱 어렵다.

 

예컨대 '바다'를 찾더라도 '폭풍을 머금은 바다' 혹은 '안개 자욱한 몽환적인 바다' 등 수식어가 붙기에 그 공간은 절대 흔해선 안 되는 것이다.

 

<곧 폭풍이 칠 것 같은 삼척의 한 해변>

 


<안개가 가득해 몽환적인 느낌의 신두리 해변>

 

같은 바다지만 그 느낌이 확연이 다르다. 금방이라도 폭풍이 칠 것 같은 해변은 파도가 부서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인물이 앵글 안에 서서 바다를 바라본다면 그 인물의 심리상태가 매우 복잡하고 불안한 상태임을 보여줄 수 있다.

 

그에 반면 안개가 가득한 해변은 썰물 때라 물은 이미 지평선 멀리 빠져 있고, 석양빛이 물들기 전에 해변으로 엄청난 해무가 밀려와 순식간에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안갯속으로 빨아들였다. 고요하게 파도 소리만 일렁이는 몽환적인 느낌이다.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한 번은 거친 폭풍이 지나간 후 제주도의 한 해변에 갔던 적이 있다. 거센 폭풍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나무껍질들이 해변으로 밀려와 쌓여 있는데, 검은 슈트를 입은 서퍼들은 내리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중간으로 나아가 서핑 보드에 앉아 있었다. 서핑 보드를 타지 않고 앉아만 있는 영문을 몰라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다.

 

"파도를 기다리는 겁니다. 좋은 파도가 올 때 까지요. 작은 파도를 계속 타면 힘이 빠져 정작 좋은 파도가 올 때를 놓치게 되거든요."

 

로케이션 매니저라는 직업에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깨달음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처럼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신념이나 생각이 있다.

 

그 이야기를 '그 공간'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 순간 '막막함'은 사라지고 희열을 느끼는 것. 이게 내 직업의 매력이 아닐까.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 제주 해변에서>

 

 

그 공간의 사람 

이렇듯 '막막함'을 행동으로 이겨내 공간을 찾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이다.

 


<커다란 카메라가 마냥 신기한 속초항의 어부 할아버지>

 

공간 안에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을 때 그 공간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커다란 장독을 빗는 장인>

 

  <아이처럼 눈매가 맑은 하동마을 이장님>

   

 <레퍼런스 사진 촬영에 흔쾌히 도움을 준 10대의 라이더>

 

이렇게 공간에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그 공간은 완성된다. 사진에 누군가를 담았다는 건,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는 것과 같다. 바로 이런 순간들이 막막함을 해소하는 가장 가슴 시원한 순간들이다.

 

 

막막함을 대행해 드립니다


<로케이션 매니저 김태영>

 

상상 속 공간을 찾는 건 정말 막막한 일이다. 10년 이상 누군가의 '막막함'을 대신해 공간을 찾고, 그 막막함으로부터 깨달았던 소중한 자료들을 더 많은 창작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화하고 행동에 옮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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